SAP와 오라클의 SW라이선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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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흰 종이 계약서 위에 놓인 금빛 촉의 검은 펜.
향후 몇년간 SW라이선스 감사는 개발업체의 단기 실적 위기를 상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을까. SW개발업체가 SaaS 제품이나 구독형 SW같은 새로운 SW 공급 모델이 확산되고 있는 현시점에 오히려 기존 사업모델 유지에 필요한 SW라이선스 감사 활동이 더 도드라지고 있다면, 이보다 더 분명한 설명을 찾긴 어려울 수도 있다.

SAP ERP

독일계 전사적자원관리(ERP) SW개발업체 SAP와 그 10년 고객인 한국의 공기업 ‘한국전력’간에 불거진 시비가 대표적이다.

SAP는 한전 사용 규모가 계약 범위를 넘어섰다 보고 감사를 요구했다. 한전은 거부했다. SAP는 서울중앙지법에 감사권한을 얻기 위한 가처분신청이 기각되자 싱가포르 SAP 아태지역본부를 통해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요청했다. 올해 8월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된 시점은 이미 중재 진행이 확정된 이후였다.

한 SW저작권법 전문가에 따르면, ICC는 국제적 중재를 지원하는 역할을 할뿐, 당사자에게 결과를 따르라 강제할 권한을 가진 곳이 아니다. 중재위원 선임부터 최종 이행사항 도출까지 어느정도 당사자간 합의를 전제로 할 것이란 설명이다. 또 도출된 이행사항조차 최종 계약 없이는 법적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SAP코리아 측에 문의한 결과 4개월간 중재 절차에 뚜렷한 진척은 없다. 결론의 윤곽이 내년말 쯤에야 나온다는 언급을 들었다.

하지만 한전이 SAP와 합의를 도출하면 최종적으로 SW라이선스 초과 사용분만큼의 합의금을 내고 상황이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전례가 많다. 이미 지난해부터 국내 여러 대기업이 SAP의 ERP 제품 SW라이선스 초과 사용 공문을 받고 기업당 수십억원씩 합의금을 냈다는 소식도 나왔다. 이들의 대응 검토 과정에선 SAP의 SW라이선스 계약 해석이 너무 SAP에 유리하게 치우쳤다며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를 찾는 시각도 있었다.

대기업이라면 합의금 물고 억울해할 게 아니라 반성할 일이다. 한 SW자산관리 업체는 SAP가 2013년 하반기 재계약 정책을 바꾸면서 사용계약을 서브스크립션 모델로 바꾼 고객엔 혜택을 주고, 설치형 SW를 유지하는 고객엔 엄격한 조건을 다는 경향을 발견했다. IT시장조사업체 가트너도 지난 4월 SAP 라이선스 최적화 전략 보고서에서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자체 개발 SW로 쓸 수 있는 권한을 명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실무 대응은 대기업 법무팀과 SW자산관리 담당자 몫이었다.

SAP의 SW라이선스 정책 강화는 예견된 일이다. 최근 몇년간 값비싼 유지보수 서비스의 대체재를 제공하겠다는 ‘리미니스트리트’같은 회사가 돌풍을 일으켜 왔다. 이런 회사는 SAP같은 기업용 SW개발업체의 양대 수익모델인 SW라이선스와 유지보수 서비스료 가운데 후자의 수익성을 잠식하고 있다. SAP로선 나머지 SW라이선스 자체의 수익성을 강화해 실적을 보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 회사를 상대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원 규모의 SW라이선스 구매 계약을 맺는 조직이라면 그만큼 치밀한 대응이 요구된다.

오라클 자바

SW라이선스 수익을 거두려는 의지라면 미국 SW회사 오라클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이 회사도 외국에서 고객사를 대상으로 대대적이 감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초점은 2010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이하 ‘썬’)을 인수 합병하며 소유하게 된 자바(Java)의 라이선스였다. 자바는 한국에서도 수많은 공공, 금융 기관과 규모가 큰 기업 조직에서 전산시스템 개발과 운영에 사용하고 있는 SW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오라클은 썬을 인수한 뒤 자바로 적극적인 수익 창출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몇달 전부터 라이선스관리팀 담당자를 대거 채용하고, 개별 자바 사용처에 SW라이선스 감사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바로 수익화에 혈안이 된 오라클의 움직임이 내년에 한층 두드러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라클이 SW라이선스 수익 창구로 삼으려는 건 자바 중에서도 널리 쓰이는 ‘자바스탠더드에디션(Java SE)’이다. 자바SE는 오라클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SW다. 일반 개발자가 자바SE를 내려받아 ‘일반적인 컴퓨팅 목적’에서 ‘기본적인 기능’을 쓰는 덴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뒤집어말하면 자바SE를 ‘고유한 컴퓨팅 목적’에서 쓴다든지, 유료인 ‘추가적인 기능’을 쓴다든지 하면 비용을 물게 된다.

쓰는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과금의 주체가 될 오라클이 갖고 있는 기준이 중요하다. 오라클이 어떤 컴퓨터를 일반 용도로, 어떤 컴퓨터를 고유한 용도로 바라볼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전산실 서버나 웹사이트, 또는 매장 운영 시스템에 자바를 사용하는 기업들에게 이런 기준은 명확하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 또한 애초부터 자바SE 각 판본의 SW라이선스 체계에 맞게 설치파일과 사용범위에 대한 설명이 제공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자바SE라는 같은 브랜드를 쓰는 기술을 놓고 사용 환경에 어떤 조건이 성립하면 비용을 물 수 있다는 식의 언급을 흔히 접할 수 있을 뿐이다. 과금 여부를 확실히 가르는 통합된 기준을 찾기 어렵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애초에 자바를 활용할 때 개발, 배포, 구동 시스템이 일정한 기능이나 유형을 넘어선 범주에서는 비용이 청구될 수 있다는 사실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막연한 불안을 조장하지 않도록 아는대로 기준을 적어 본다. 일단 기본기능만 사용하는 자바SE를 PC,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에서 구동한다면 무료다. 자바개발킷(JDK)과 자바런타임환경(JRE)도 자바SE 사용시에는 무료로 딸려 온다. 다만 임베디드 시스템에선 그냥 자바SE도 유료다. 또 자바SE에 아예 ‘자바미션컨트롤’이나 ‘자바플라이트레코더’같은 유료 추가기능을 묶은, 몇가지 세분화된 유료 판본 종류가 존재한다. ‘자바SE 어드밴스드(Advanced)’라든지 ‘자바SE 스위트(Suite)’라든지 ‘자바SE 어드밴스드 데스크톱(Advanced Desktop)’이라든지. 3가지 판본은 각각 사용자당 라이선스 및 지원비용 또는 구동되는 컴퓨터 시스템의 프로세서당 라이선스 및 지원비용이 책정돼 있다. 이것 뿐이다.

한국오라클 측에 구체적인 기준을 밝혀 줄 내부 전문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대응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또 본사의 자바 SW라이선스 정책이나 내년중 감사가 진행될 가능성에 대해선 본사로부터 어떤 사항도 전달받은 바 없다고만 답했다.

170402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