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보를 위한 AI”…미국이 동맹국들과 ‘파트너십 포 디펜스’를 결성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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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블록 [사진=Pixabay]
최근 2년간 반도체 중심의 공급망에 파장을 끼친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인공지능(AI) 기술을 비롯한 디지털 신기술의 패권 경쟁으로 번졌다. AI 분야에서 급속한 발전을 거두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미중 기술 패권경쟁의 다음 격전지 AI

지난 2020년 8월 홍콩의 영자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당시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발간한 ‘신흥 군사기술: 배경과 의회 현안(Emerging Military Technologies: Background and Issues for Congress)’ 보고서에서 AI와 양자컴퓨팅 등 첨단 군사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최대 경쟁 국가가 중국이라고 표현한 내용을 주목한 뉴스를 보도했다.

해당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중국의 AI가 군사적 목적에 유용함을 지적했다. “국제 AI 시장에서 중국이 미국에 가장 가까운 경쟁자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중략)… 이 분야에서 최근 중국의 성과는 AI 개발 목표를 실현하는 중국의 잠재력을 드러낸 것이다. …(중략)… 그런 기술은 (다른 국가의) 첩보 활동에 대항하고 군사적 목표물 선정을 돕는 데 쓰일 수 있다.” 또 SCMP의 보도에 따르면 맬컴 데이비스 호주전략정책연구소 선임분석가가 “(중국이) 많은 분야에서 미국과 대등하고 극초음속, AI, 양자기술 등 일부 분야에서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면서 “그들은 21세기 군 정보화 또는 지능화를 위해 인민해방군의 역량 개발을 지원하는 광범위한 국방기술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선도적인 기술 수준과 대규모 투자 예산으로 군사력 우위를 업고 세계 패권을 주도해 왔다. AI를 비롯한 디지털 신기술 분야에서도 다른 국가를 넘어선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안보와 주권의 기반을 다지고자 한다. 그런데 중국과 같은 곳에서 무기체계를 비롯한 군사 목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AI 기술의 발전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은 미국의 정치인들과 안보 당국자들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다.

미국 CRS에서 2021년 5월 발간한 ‘인공지능: 배경, 선별 현안, 정책적 시사점(Artificial Intelligence: Background, Selected Issues, and Policy Considerations)’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비즈니스에 AI가 채택되고 있고 184개국 정부가 AI에 초점을 맞춰 태스크포스, 연구활동, 논의보고서 작성 등의 활동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10여곳은 다양한 범주의 국가 AI 전략을 내놓았다”고 진단했다. 같은 보고서는 또 미국이 2020 회계연도 국방·비(非)국방 분야의 AI 관련 활동에 각각 40억 달러(약 4조7700억원)와 11억 달러(약 1조3100억원)를 투자했는데, 2018년 중국 정부의 AI 연구개발 지출 규모는 수백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산업·외교 차원의 국제 파트너십 강화 나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정부 수반으로 뒀을 때부터 국내외 산업 경쟁력과 기술 선도 역량 강화를 위해 AI 연구개발 강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9년 8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연방정부 차원의 AI 표준화 계획을 담은 ‘기술적 표준과 관련 도구에 대한 연방의 계획(Plan for Federal Engagement in Developing Technical Standards and Related Tools (AI Standards Plan)’이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 계획은 개념과 용어, 데이터와 지식, 인간 상호작용, 측정지표, 네트워킹, 성능 측정과 보고 방법론, 안전, 위험관리, 신뢰도 등 AI 기술에서 표준화할 9개 분야를 정의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일반적인 산업표준 개발 과정은 민간의 자발적인 합의에 기반하고, NIST는 다른 민간 기업과 관련 기관이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중국은 자국 산업을 육성하면서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통제하기 위해 국가기관이 표준을 만들고 이를 정책적으로 활용한다. 여전히 거대한 중국의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기업은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산업 규범과 기술 표준을 따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기술 생태계와 세계 시장에서의 저변은 점점 더 확대될 수 있다.

중국이 국가주도 정책으로 AI 기술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자 미국이 민간과 연방정부 등 공공의 협력을 통해 AI 기술 표준화 활동을 강화할 명분도 생겼다.

미국의 ‘미-중 경제안보심의위원회(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 2020년 연례보고서는 이런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상업적 요구에 부응해 산업별로 기술 표준을 개발하고 채택하는 미국과 달리, 중국 국가기관은 표준을 만들어 산업 및 외교 정책 목표를 진전시키는 데 활용한다. 역사적으로 베이징은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국내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의무적이고 독특한 국내 기술 표준 개발을 우선시했다. 이제 중국은 국제 표준화 기구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산업정책과 외교전략을 조율하고 있는데, 이는 해외에서 중국의 기술 채택 사례를 늘리고 기술 도입 방식의 규범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다.”

앞서 NIST에서 마련했다고 소개한 ‘AI Standard Plan’은 AI 기술에서 표준화 대상 9개 분야를 정의하기만 한 게 아니다. 국제적인 AI 표준 개발 과정에 미국의 기술 선도 지위를 유지하고 더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됨직한 여러 권고 사항을 함께 담고 있다. 심의위원회 연례보고서에는 크게 다음 네 가지가 소개돼 있었다. 하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머신러닝 및 인공지능 분과위원회 내의 표준 조정자 지원’과 ‘인공지능 표준 및 개발 분야에 대한 참여와 전문성 배양을 장려하는 명확한 경력 개발 및 승진 경로 개발’을 포함하는 “연방기관 간 AI 표준 관련 지식, 리더십, 정책조정 강화” 방안이다. 다른 하나는 “AI 표준의 신뢰성 요소가 표준 및 표준 관련 도구에 실질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폭넓은 탐색과 이해를 증진하고 가속할 집중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방안이다. 또 하나는 “신뢰할 수 있고 견고한 AI를 발전시킬 AI 표준과 관련 도구를 개발하고 사용하도록 민관 협력을 지원하고 확대”하는 방안이다. 마지막 하나는 국제 협력을 통해 (미국과) ‘유사입장국(like minded countries)’과의 정보 교류를 촉진하는 등 미국의 경제·안보 요구와 부합하는 AI 표준을 발전시키기 위해 국제 당사자들과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방안이다.

국방과 안보로 확장된 국제 AI 기술 협력 논의

미국이 AI 분야에서 중국의 잠재력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미국의 주도로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이 참여해 국방과 안보 관점의 AI 분야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그것은 미국 국방부 합동인공지능센터(JAIC)가 주재하고 동맹국이 참여하는 ‘AI 방위동반자관계(Partnership for Defense)’다.

JAIC는 지난 2020년 9월 15~16일 13개국 군사·방위 조직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겸한 최초의 AI 방위동반자관계 포럼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미국의 방위 파트너’로 지칭된 참석자들이 안보 관점에서 AI로 구현된 기능을 도입하기 위해 각각의 정책, 접근방법,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행사 첫날 각 참석자들은 저마다 AI를 국방 분야 임무 수행에 활용하면서 얻은 교훈과 모범 사례를 공유했다. 2일차 행사의 논의는 AI 도입 과정에서 구현되는 AI 윤리 원칙 및 모범 사례 정의 등을 비롯해 방위를 위한 AI 윤리 원칙에 초점이 모였다.

JAIC는 당시 “AI 방위동반자관계는 유사입장국들이 AI의 책임 있는 이용을 장려하고 AI 윤리 구현에 대한 공동의 이익과 모범 사례를 발전시키며 상호협력을 촉진하는 틀을 마련하고 AI 정책에 대한 전략적 메시지를 조율하기 위해 모인다”고 설명했다. 또 “이 다자간 포럼은 AI 도입 정책과 접근방식을 방위 분야의 가치에 기반한 글로벌 리더십을 제공하고자 한다”면서 “AI의 광범위한 파급력과 빠른 발전 속도를 감안해, 책임 있는 AI 분야에서 협업할 수 있는 고유의 생태계를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1월 26~27일 진행된 제2차 포럼의 논의는 AI 준비도(readiness)의 필수 조건과 AI 제품수명주기 전반에 걸친 윤리와 안전조치 적용의 중요성, AI 도입 과정 내 데이터의 중요성에 집중됐다. 스테파니 컬버슨 JAIC 국제AI정책 총괄은 “이번 대화를 통해 포럼 참가국들 사이에서 상호방위협력의 미래 영향을 미칠 AI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이익을 증진시키고 있다”면서 “방위 분야에서 책임 있는 AI를 설계·개발·사용할 방안을 구체화하고 상호협력을 강화해 우리 군의 상호운용성과 준비도를 높일 기회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2021년 한 해 동안 AI 방위동반자관계 포럼은 세 차례 더 개최됐다. 포럼이 거듭되면서 미국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호주 대륙의 동맹국들과 함께 실제 안보 분야의 AI 도입과 실용화를 위한 논의를 추진해 나갔다.

AI 방위동반자관계 출범 당시 노르웨이, 덴마크, 미국, 스웨덴, 에스토니아,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이스라엘, 일본,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한국, 이 13개국의 군사·방위 대표단이 참석했고, 제2차 포럼에도 이 13개국 소속 담당자들이 자리했다.

제3차 포럼이 작년 5월 26~27일 열렸다. 기존 13개국 소속 군사·방위 대표단에 더해 네덜란드, 독일, 싱가포르에서 추가로 참가해 총 16개국이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선 방위조직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AI를 도입할 준비가 된 인력을 채용, 교육, 훈련,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각 참가국 대표들이 인적자본 전략과 정책, 조직과 문화의 변화를 추구하는 리더십의 역할, 공무원을 훈련하고 유지할 교육훈련 프로그램, 민간 부문과의 협업, 디지털 인력을 현대화할 도구와 프로세스에 대해 토론했다.

당시 JAIC 측은 강대국 간 힘의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이 벌어지는 시대에 동맹과 방위동반자관계의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AI 분야 노력을 일치시키고 연합작전을 위한 상호운용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적이라고 강조했다. JAIC는 또 미국 국방부의 리더들이 초기 현안과 요구사항에 집중하는 것이 디지털 시대에 함께 일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군사 역량을 증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캐슬린 힉스 미국 국방부 부장관은 “AI 방위동반자관계는 주요 국제 파트너와 나란히 협력해 공동의 이익을 진전시키고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범적 사례”라며 “우리는 함께 방위를 위한 AI 역량을 책임 있게 개발하고 사용해 공유된 민주주의 규범과 가치를 지지하고 장려하는 데 앞장설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포함한 16개국의 군 관계자들은 작년 10월 20~21일 열린 제4차 포럼에 다시 모였다. 이번엔 처음으로 미국이 아니라 영국 국방부가 AI 방위동반자관계 포럼 개최국이 됐다. 2020년 열린 첫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방위 및 데이터 준비도, AI에 대비가 된 인력 등에 대한 AI 윤리 원칙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췄다.

AI 방위동반자관계 포럼을 주관하고 있는 JAIC의 역할은 미국 국방부의 AI와 데이터 관련 업무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 미국 국방부가 JAIC와 다른 핵심 기술 부서의 지휘 체계를 통합하고 있다. 군사 행정과 작전 수행을 위한 AI 기술과 데이터 활용 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해 핵심 조직의 재편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8일 미국 연방정부 기술정책 전문매체인 넥스트거브(NextGov)는 미국 국방부가 2022년 여름까지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JAIC와 ‘최고데이터책임자(CDO)실’과 ‘국방디지털서비스(DDS)’가 이끈 모든 데이터 중심 및 AI 연계 업무를 총괄하고 지원할 새 조직을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인용된 캐슬린 힉스 국방부 부장관의 문건에 따르면 2022년 2월 1일 국방부 장관실(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에 힉스 부장관에게 보고하는 ‘최고디지털AI책임자(CDAO)’ 직책이 신설되고, 이 CDAO의 관할인 ‘CDAO실(office)’이 6월 1일부터 정식 출범할 신설 조직이자 기존 JAIC의 후계 조직이다. 한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추격해 온 중국의 위협과 마주한” 시장조사와 산업현황이 국방부의 조직개편과 직책신설 움직임에 영향을 줬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DDS, JAIC, CDO실이 실제 가치를 창출했지만 이제 우리는 기술 성숙도에 도달했고, (스타트업에 빗대) 시리즈D 추가 투자와 자원 그리고 이걸 다음 단계에 올려 놓을 일종의 결합자나 통합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솔트룩스 네이버블로그 ‘인공지능 인사이트’ 필진으로서 작성한 첫 번째 정기 원고. 220211 솔트룩스 네이버블로그 포스팅으로 게재됨. 230125 개인 블로그에 원문 비공개로 올림. 230131 공개로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