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 정부의 웹사이트 총량제는 코로나19 방역을 어떻게 방해하나

[사진=Pexel]

질병관리청의 전신인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03년 국립보건원을 확대 개편한 조직으로 출범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의 최초 공식 웹사이트 주소는 ‘kcdc.go.kr’ 였고, 출범 이듬해인 2004년부터 작년까지 ‘cdc.go.kr’ 라는 도메인을 사용해 왔죠.

올해2021년 초 질병관리청은 웹사이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공지합니다. “질병관리청 누리집 이용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cdc.go.kr 도메인(개청 전 사용)과 kdca.go.kr(개청 후 사용) 도메인을 병행 사용하였으나 도메인 관리의 일원화를 위해 21.04.19(월) 09시 부터 cdc.go.kr 도메인이 삭제 되니 변경된 도메인으로 접속하시기 바랍니다.”

질병관리본부 도메인을 4월부터 쓸 수 없으니 새 도메인으로 웹사이트에 접속하라는 얘기였죠. 작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자 질병관리본부가 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작년 9월 질병관리청으로 확대 개편됐고, 그러면서 기관 명칭 변경에 따라 공식 웹사이트 주소도 kdca.go.kr 라는 도메인으로 바뀌었거든요.

하지만 사실 7월 22일 현재도 기존 질병관리본부 도메인으로 질병관리청 웹사이트에 접속이 됩니다. 지난 4월 중에 기존 도메인을 삭제하겠다고 한 저 공지문도 어느 샌가 사라졌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볼 수는 있지만요.

질병관리청은 기존 도메인을 삭제하겠다는 결정을 한시적으로 유보한 상태입니다. 두 개 도메인으로 모두 질병관리청에 접속할 수 있게 했어요. 다만 새 도메인으로 통합하고, 기존 질병관리본부 도메인을 삭제하겠다는 결정 자체는 유효합니다. 기존 질병관리본부 도메인으로 축적되고 여기에 링크된 수많은 정보가 사라지는 게 결국 벌어질 일이란 점이 걱정입니다.

간과되는 공공기관 도메인의 역할

기존 도메인은 그냥 도메인이 아니죠. 질병관리본부의 공식 웹사이트가 운영된 16년간 이 기관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공표된 수많은 게시물·파일의 위치를 나타내는 유일한 연결지점입니다. 연결지점이 소실되면 인터넷 포털·검색엔진이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죠. 온라인에서 검색되지 않는 정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고요.

여기에 작년2020년부터 매일 온라인에 게재되고 있는 코로나19 국내발생 현황의 조회수가 각 건마다 통상 8000회 이상, 예방접종과 관련된 정보는 최소 1만회 이상이더군요. ‘예방접종 예약일정’과 같은 구체적인 계획을 다룬 두 게시물의 조회수는 2만8000회, 6만3000회에 달했어요. 많아야 8000회쯤 되는 사스(SARS)나 메르스(MERS) 관련 게시물보다 국민의 이용량·의존도가 높단 뜻이죠.

게다가 질병관리청은 매일 집계·검증 후 제공하고 있는 일일 확진자 수와 예방접종 현황뿐아니라 감염확산 차단을 위한 보건의료 지식, 사회적거리두기 단계별 행동 권고사항, 그 적용대상과 범위 등 모든 방역과 관련된 핵심 정보를 공표하고 있고, 잘못된 정보를 판별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요. 도메인 삭제로 기 생산된 수많은 정보가 소실되면, 방역에 직접적인 방해가 되겠죠.

출처 ≒ 검증 가능성

정보의 소실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이 정보를 활용해 생산·가공된 2차 자료들이 많이 있죠. 언론 보도, 학술 논문, 타 기관의 공식발표를 포함해서요. 이런 자료들의 정확성·신뢰성·유효성은 그 출처의 명확성과 연속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본부 도메인이 삭제된다면, 그 도메인으로 열람할 수 있었던 자료를 인용하고 있는 보도·논문·보고서의 검증이 어려워져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글을 작성하고 핵심이 되는 데이터의 출처로 질병관리본부 도메인 기반의 인터넷 링크를 제시했다고 치죠. 하지만 도메인이 삭제되면 그걸 검증하고 토론하는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집니다. 애초에 그 데이터가 실제 존재했는지, 그 데이터의 출처인 자료가 어떤 맥락에서 그걸 제시했는지 알 수 없게 되니까요.

지금도 각국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바이러스 자체만이 아니라 방역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가짜뉴스, 백신·치료제와 관련된 역정보를 퇴치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온라인에서 질병관리본부의 기존 자료가 검색되지 않고, 이를 인용하는 2차 자료들의 출처가 불명확해질 경우, 이런 가짜뉴스나 역정보에 맞서기 위해 방역당국이 더 많은 자원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의 웹사이트와 하나의 도메인

방역의 최전선에 있는 질병관리청이 대체 왜 방역을 저해할 수도 있는, 기존 질병관리본부 도메인의 삭제를 결정한 걸까요?

사실 질병관리청이 원해서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행정안전부의 ‘웹사이트 총량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행정·공공기관의 대국민용 웹사이트 총량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웹사이트를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원칙적으로 “신규 웹사이트를 구축 시, 이용률이 저조하거나 불필요한 웹사이트를 폐기하는 등 총량 준수”를 하도록 하고 있어요.

지난 2019년 12월 13일 개정·배포된 ‘웹사이트 발주자‧관리자를 위한 행정·공공 웹사이트 구축·운영 가이드’를 보면, 총량제는 웹사이트만이 아니라 웹사이트에 접근하기 위한 도메인명 사용 또한 최소화하도록 권고합니다. 한 기관의 공식 웹사이트 하나에 두 개의 도메인명을 사용할 수는 없는 거죠.

물론 질병관리청이 기존 질병관리본부의 도메인을 유지한 채로 기관의 웹사이트를 운영된다면, 문제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질병관리청은 이런 선택을 할 수 없어요. 공공기관의 웹사이트 주소로 사용되는 도메인은 해당 기관의 영어 약칭 문자열을 쓰도록 돼 있는데요. 질병관리청으로 개편되면서 기관의 영어 약칭도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기관의 영어 약칭을 안 바꿨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안 됩니다. ‘정부조직 영어명칭에 관한 규칙’이라는 게 있거든요. 네, 또 행정안전부의 규정입니다.

총량제가 신뢰보다 중요할까

행정안전부는 웹사이트 총량제를 5~6년 전 처음 도입한 것 같습니다. 2015년 현황조사 후 2016년부터 매년 각 기관별 웹사이트 총량을 자체 지정하고 연간 10%씩 의무 감축하라고 각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 통보했죠. 공공부문의 웹사이트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니만큼, 무분별한 웹사이트 개설을 지양하라는 취지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정부부처와 기관들의 조직개편·명칭변경이 빈번하고, 영문 약칭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놓고, 그 규정에 따라 공식 웹사이트 도메인을 딱 하나만 쓰게 하고 있는 경우, 지금처럼 더 큰 문제를 조장하는 격입니다. 수많은 대국민 서비스용 공공 웹사이트들이 공표하고 인터넷에 게재한 자료들이 몇 년도 되지 않아 소실되고, ‘죽은 링크’만 양산하는 문제, 국민의 대정부 신뢰를 갉아먹는 문제죠.

비대면 시대의 국민 생명과 안전 문제

문재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소속 기관이었던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작년 9월 12일 당시 정은경 본부장을 초대 청장으로 임명하면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큰 기대가 있었다”라며 “승격한 것을 계기로 더 큰 역할을 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당부했습니다.

정은경 청장도 이틀 뒤 개청 기념식 취임사를 통해”질병관리청의 당면 과제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이라면서 “국민건강 피해와 사회·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백신 등 해결 방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우리 의료와 방역체계, 사회시스템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코로나19 발생 규모와 속도를 억제하고 통제하는 장기 유행 억제전략을 추진하겠다”라는 방역 목표를 제시했고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질병관리청의 임무 수행에 사실상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행 웹사이트 총량제와 도메인 정책은 개선돼야겠습니다.

이 글에선 국민이 질병관리청과 같은 방역의 최전선에 있는 기관의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게 하고, 그 신뢰성도 떨어뜨리는 문제 하나만을 짚었는데요. 역대 정부가 틈만 나면 바꾸고 개편했던 모든 행정·공공기관의 웹사이트에서 반복된 행태입니다. 정부가 ‘디지털 신뢰사회’를 부르짖고 ‘스마트 전자정부로 대국민 서비스 수준을 높이겠다’며 내세운 목표들이 공허해 보여 아쉽습니다.

2108xx 북저널리즘 저널 계정에 두 번째 글로 게재. 241110 개인 블로그에 비공개로 옮김. 250303 공개로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