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말이 있다. 2021년 7월 11일 현재 구글에서 ‘Digital Transformation’을 검색한 결과는 약 4억9900만건에 달하고, 한국어 음차 표기인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검색한 결과는 약 103만건으로 나타난다. 이 검색 결과 건수와 이 어휘를 한국어로 번역한 ‘디지털 전환(약 3080만건)’, ‘디지털 혁신(약 2510만건)’, ‘디지털 변환(약 868만건)’, ‘디지털 전이(약 81만건)’, ‘디지털 변혁(약 39만건)’ 등의 검색 결과 건수를 모두 합하면 한국에서만 검색결과가 6000만건 이상(중복 포함)으로 상당히 유행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은 경영 컨설턴트나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의해 때때로 언급되고, 정부와 공공기관의 보고서 또는 학계와 연구계 인사의 강연이나 발표 자료에도 오르내린다. 경영관련 대중서적이나 경제매체, 정보기술(IT) 전문매체에서도 숱하게 다뤄진다. 나를 포함한 현직 기자들이 기사에 수시로 적어 넣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은 짧지 않은 어휘인데도 사용 빈도가 높은 편이어서 축약 표기가 널리 쓰인다. 디지털의 D와 트랜스포메이션의 T를 붙인 DT가 사용된다. 그런데 다른 표기도 있다. 디지털의 D와 트랜스포메이션의 X를 붙인 DX도 제법 많이 사용된다. 트랜스포메이션을 왜 X로 쓸까?
이 축약 표기와 관련된 고민을 스스로 해 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얼마 전 기업간거래(B2B) 전문 마케팅 애널리스트 겸 칼럼니스트인 지인 김정희님께서 화두를 던졌다. 본인의 페이스북에 “갑자기 무지한 질문이 생겼는데…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약어로 DT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DX라고 표기나 말을 하는데 X가 어디서 나온건지, 왜 표기가 바뀐건지 아시는 분 계시나요?”라고 글을 남긴 것이다
덩달아 궁금해졌다. 나름대로 검색을 해 본 결과를 정리한다. 미리 세 줄로 요약하자면, 범 라틴 문자권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X라는 문자에 건너다(cross) 또는 바꾸다(trans)와 동등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게 보편적인 설명이다. 그리고 X라는 문자에 이런 의미가 포함된 이유는, 두 선이 교차하고 있는 문자의 시각적 형태가 그런 움직임을 보여 주는 것처럼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cross-나 trans-를 포함하는 특정한 영어 단어는 이에 해당되는 문자를 X로 대체하기도 한다.
xmit과 xfer
온디맨드 교열 서비스 ‘Pain in the English’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jarbalix라는 이용자가 올린 질문에 따르면 그렇다. 그는 “기술적인 용어를 줄여 쓸 필요가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어떻게 ‘trans’에서 ‘x’가 나오는 거냐”라고 물었다. 예를 들면 전산이나 통신 분야에서 ‘transmit’이나 ‘transfer’를 ‘xmit’과 ‘xfer’로 줄여 쓰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는 “여기서 ‘trans’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위치가 바뀐다는 뜻”이라면서 “내 짐작은 x가 시각적으로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가로질러 움직이는 경로로써 해석된다는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cross-와 trans-
이 질문자의 가설은 2007년 2월 8일 Ian4라는 이용자가 올린 답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요컨대 일부 단어의 trans를 x로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임의로 확대 적용된 사례라는 것이다. Ian4는 “흔히 ‘x’는 ‘건너다(cross)’를 나타낼 때 쓰이는데 그 모양이 두 선의 교차 형태이기 때문”이라면서 “(글씨를 넣을) 자리가 부족한 거리 표지판에서 종종 볼 수 있고 일례로 ‘deer crossing’을 의미하는 ‘deer x-ing’같이 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많은 사례에서 ‘cross-‘와 ‘trans-‘를 적어도 문법적으로는 맞바꿀 수 있다”라며 “예를 들면 transatlantic flight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것이고, 경피(transdermal)는 피부를 가로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하지만 당신이 예를 든 ‘transmit’과 ‘transfer’같은 단어의 사례는 그렇게 직관적인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단어에서 ‘-mit’와 ‘-fer’는 명확한 고유 의미를 갖지 않는 의존형태소(bound morphemes)”라며 “뭔가가 ‘mit’이나 ‘fer’를 건널 수 있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반면 ‘-atlantic’이나 ‘-dermal’에서 의미를 추출하기는 쉽다”라고 썼다. 그는 “내 생각엔 ‘trans-‘를 ‘x-‘로 대체하는 건 (cross-를 x-로 대체하는 관습의) 직관적인 사례를 단순하게 임의로 확장시켜 ‘transmit’나 ‘transfer’같이 쓴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뜻은 across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 추론은 같은 날 porsche라는 이용자의 또 다른 답변을 통해 반박된다. porsche는 “사실 transmit와 transfer의 ‘trans-‘는 ‘transatlantic’의 사레와 완전히 같은 것”이라면서 “-mit는 보내다(send)를 뜻하는 라틴어 mittere에서 왔고, -fer는 나르다(bear, carry)를 뜻하는 라틴어 ferre에서 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transmit의 용도는 더 광범위하긴 하지만, send와 비교해 볼 때 종종 뭔가를 건너서(across) 또는 특정한 매개체에 올라타서 보내는 것을 의미하고, transfer는 말 그대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뭔가를 건너서 나르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로지르는’ 문자 X
이같은 검색 결과를 찾기 전에, 김정희님의 몇몇 페이스북 친구들이 답변으로 남긴 댓글도 함께 살펴 봤다. 한 친구분인 B님은 일본의 한 인사업무(HR)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웹사이트의 일본어 설명을 찾아, 한국어로 자동 번역한 문구를 제시했다. 트랜스포메이션의 ‘트랜스(trans-)’에 ‘교차(交叉)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교차를 문자로 나타내는 X가 쓰였으며, DT라는 약자를 쓸 경우 의미가 제한된 프로그래밍 용어에 그칠 수 있다는 게 해당 설명의 핵심이었다. 이 설명의 전체적인 맥락은 앞서 제시된 것과 대동소이했다.
사족 ― 그래서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은 뭔가요
관점에 따라 세부적인 표현들은 달라질 수 있지만, 간단히 정의하자면 ‘조직이 디지털(digital) 기술을 활용해 업무와 사업의 관행·절차들을 바꾸는(transform) 일련의 활동’이다. 이보다 좀 더 길고 구체적인 여러 버전의 정의나 설명이 있다. 긴 버전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정의는 대개 핵심적인 의미보다, 그 목적이나 지향점을 품고 있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이 ‘외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경영 성과를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이뤄진다는 식의 언급이다. 이 안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이 있다. 생각나는대로 예를 들면 환경, 변화, 불확실성, 산업, 혁신, 생산성, 신사업, 융합, 경영, 생존, 전략, 경쟁력,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 등이다.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이 단어 가운데 중 서너 개가 포함된 서로 다른 버전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정의를 밤새도록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이 단어 목록에 없는 말이라도 얼마든지 새로 더해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의 정의를 내릴 수도 있다. 번역자가 transform을 뭘로 보느냐에 따라서 번역어를 디지털 전환, 디지털 혁신, 디지털 변환, 디지털 전이, 디지털 변혁 등으로 쓰게 된다. 이가운데 딱 들어맞는 한국어 표현은 없지만 cross와 의미가 통하고 X와 바꿔 쓸 수 있는 trans의 의미를 살린다면 ‘전환’, ‘변환’, ‘전이’ 정도가 어울린다. 주로 ‘전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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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북저널리즘 저널 계정에 첫 게재. 최초 발행 시점의 본문에 익명(A님)으로 썼던 지인의 실명과 페이스북 계정 링크를 본문에 추가. 210728 수정, 241110 개인 블로그에 비공개로 옮김. 250304 공개로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