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포케몬 고[1] 못하는 이유는 구글에 한국지도 반출을 불허했기 때문이라는 기사가 많았던 지난주, 국토부 산하기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빠르게 해명성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국토교통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함께 알리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솔직히 일부러 그랬을 거라 생각진 않지만 너무 헛점이 많은 내용이라 그냥 무시하기가 어렵다.
공공기관이 특정 사안에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버젓이 보도참고자료라는 이름으로 배포해 기정사실화하는 행태는 잘못된 일이라 생각하고, 보도자료 원문(글머리 기호가 붙은 문장들)을 하나씩 뜯어 뭐가 문젠지 살펴 보기로 했다.
“□ ‘포켓몬 고’는 GPS 기능을 활용한 위치기반 게임으로 정밀 지도데이터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구글社에서 요청한 지도반출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첫줄부터 문제다.
정밀 지도데이터가 지금은 필요치 않아도 나중에 필요해질지 어떨지는 국토지리원에서 장담 못한다. 나중에 정밀 지도데이터가 추가된 게임 서비스가 나오고, 그 때 정말 지도데이터 때문에 한국 이용자들만 손해를 본다는 비판에 놓일 경우 할 말이 없어질 것이다.
신중을 기했다면 해당 게임이 지금은 정밀 지도데이터를 쓰지 않는다 정도로 표현했으면 충분했다. 특정 회사의 서비스에 어떤 데이터가 불필요하다는 식의 서술은 불필요하고 이래저래 스스로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꼴이 되지 않나 싶다.
” ㅇ 나이엔틱(Niantic)에서 ’14년 출시한 위치기반 게임인 ‘인그레스(Ingress)’는 ‘포켓몬 고’와 같은 지도데이터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에서도 계속 서비스 중입니다.”
나는 이 둘째줄의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넷상 어딘가에 있다면 누가 좀 찾아 줬으면 좋겠다.)
우선 포케몬 고가 어떤 지도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외신 디애틀랜틱 보도를 보면, 개발사는 이를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토지리원에서 별도의 확인을 거쳤거나 공신력있는 출처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포케몬 고가 같은 회사에서 만든 게임 인그레스와 같은 지도데이터를 쓴다는 설명 자체가 검증되지 않은 얘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포케몬 고와 인그레스 매핑 시스템간의 연관성에 대해, 개발사가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은 (외신 매셔블 보도에 따르면) 포케몬 고 핵심 구성요소인 ‘짐(gyms)’과 ‘포케스톱(Pokestops)’의 배치를 위한 초기 데이터로 인그레스의 ‘포털(Portals)’ 위치와 중요도 값을 활용했다는 것 정도다. 이건 지도 위에 표시되는 가상의 요소에 관한 데이터를 가리킨다. 즉 게임내 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지도 데이터와 무관하다.
마지막으로 인그레스는 국내서 정식 서비스 중이긴 하지만, 한국에선 지도 데이터가 표시돼야 할 영역에 칠흑같은 공백만 표시되고 있다. 인그레스의 게임내 지도는 구글 기반이다. 구글 본사 데이터센터에 지도 데이터가 없는 한국 지역의 경우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 상태다. 따라서 국토지리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그레스와 포케몬 고가 같은 지도를 사용하고 있다면, 오히려 포케몬 고 이용자들이 한국에서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이유는 정부 탓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 * ‘포켓몬 고’ 게임은 닌텐도와 나이앤틱이 공동 개발한 위치기반의 증강현실 게임으로 현재 게임 앱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3개국에 출시 중”
“□ 강원 영동 북부와 울릉도 등의 지역은 미국과 동일한 서비스 권역(NR)으로 포함되어 ‘포켓몬 고’ 게임이 가능한 것입니다.”
” * 게임 데이터는 세계를 마름모꼴로 나눈 권역지도를 사용하는데, 미서비스 권역은 수신되는 GPS 신호를 꺼버리는 방식으로 제한”“ㅇ 현재 나이엔틱(포켓몬 고 개발업체)는 AS권역을 서비스 지역에서 배제하고 있으며, NR권역(속초, 양양, 울릉 등)은 GPS 신호 수신 가능”
이 네 줄은 각각 의미있는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종합해 보면 앞뒤가 안 맞는다.
우선 전체적으로 포케몬 고가 인그레스의 매핑 시스템과 지도 데이터를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한 서술이다. 앞서 인그레스의 지도 데이터를 포케몬 고가 그대로 썼다고 표현할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포케몬 고 게임 서버의 매핑 시스템 역시 역시 인그레스의 것을 계승했다는 근거 역시 없는불충분한 것 같다. 어딘가에 있는 근거를 내가 그저 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근거가 없는 얘기라면 정부 산하기관인 국토지리원의 설명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다.
내가 양보해서 국토지리원의 설명처럼 포케몬 고가 지구를 6개 권역으로 분할한 인그레스의 매핑 시스템을 계승했다 치자. 확인은 안 됐지만 포케몬 고의 지도 데이터도 인그레스의 것과 똑같다 봐 주자. 이런 전제에서, 이용자 GPS 신호를 수신하는 게임 서버의 커버 영역을 논하려는 국토지리원의 설명은 여전히 이상하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현재 강원 영동 북부 지역에서 포케몬 고 게임이 가능한 이유가 미국과 동일한 서비스 권역(NR)에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점은 그런가보다 넘어갈 수 있다. 한국 지역 대부분은 AS(아시아)권역에 포함되는데, 개발업체에서 “AS권역을 서비스 지역에서 배제하고 있다”는 게 국토지리원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경우, 국토지리원이 근거로 제시한 6개 권역 분할 지도 이미지만 들여다봐도 이상한 점이 드러난다. 분명히 국토지리원은 미국, 호주(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 포케몬 고 서비스가 정식 서비스되고 있다고 전했는데, 호주가 위치한 오세아니아대륙의 절반은 문제의 6개 권역 분할 지도에서 AS권역에 포함돼 있다. 어떻게 국토 절반 가량이 서비스 지역에서 배제된 호주가 포케몬 고 정식 서비스 국가라는 걸까? 상식적으로 국토가 AS권역에 절반이나 포함된 호주가 정식 서비스 지역일 수 있다면, 한국 역시 정식 서비스가 가능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과연 AS권역이 서비스 지역에서 배제된 걸까 아니면, 한국을 포함한 몇몇 지역이 선택적으로 배제된 것일까?
국토지리원 측의 설명은 이런 의문에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측면이 크다. 그리고 애초에 AS니 NR이니하는 6개 권역 분할 방식이 포케몬 고라는 게임에도 적용되는 것인지부터 확인하고싶다.
[1] Pokémon Go. 한국 언론과 다수 대중이 ‘포켓몬 고’라는 표기를 선호하고 있는데, 브랜드의 유래 및 기원이나 발음과 거리가 멀기에 이 글에선 의도적으로 ‘포케몬 고’라 통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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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블로그에 160719 작성한 글을 바로 공개한 뒤 160807 재편집을 겸해 수정 및 보완.
그새 포케몬 고를 정식 서비스하지 않고 있는 한국에서, 속초뿐아니라 일본에 인접한 일부 권역까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일본에 포케몬 고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면서다. 이는 인그레스의 6개 권역 분할 지도 형태의 매핑 시스템을 포케몬 고가 활용했다는 명제를 뒷받침할만한 소식일 듯하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6개 권역으로 나눈 세계 지도의 세분화된 마름모꼴 지역 구별 체계를 계승했다고 해야 할 듯.
그러나 더 확실해 진 건 포케몬 고 개발업체가 특정 권역을 통째로 서비스 대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최대한 출시 대상 지역을 세분화해 선별하고 있다는 점일 지도 모르겠다. 개발업체가 출시 후보 지역 중 아시아 권역에 속하는 나라 가운데 한국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중 일본을 우선시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