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들이 아빠의 프린터를 부순 건 내가 8살때 일이다. 난 프린터의 열기, 그 전자레인지에 주방용랩을 씌워 돌렸을 때같은 냄새, 기기 안에 새 충전재를 채워넣을 때 아빠가 굉장히 열중하던 모습, 그리고 프린터에서 갓 구워진 물건이 나올 때의 느낌을 기억한다.
경찰들은 문으로 들이닥쳐 곤봉을 휘둘렀고 그중 한 명은 확성기를 통해 영장을 낭독했다. 아빠의 고객중 한 명이 경찰에 찌른 것이다. 그 대가로 정보경찰은 행동 강화제, 기억 보충제, 신진대사 촉진제같은 고급 조제약을 건넸다. 그런 종류의 것들은 처방전을 들고 가서 값을 치러도 되지만 집에서 프린트해 만들 수도 있다. 집 부엌에 갑자기 웬 덩치들이 나타나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때려잡고 부수는 식의 위험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들은 할머니가 본국에서 가져온 트렁크를 박살냈다. 소형냉장고와 공기청정기를 창밖으로 던져 부쉈다. 내가 키우던 새는 기동화를 신은 큰 발에 거의 부숴진 프린터의 엉킨 전선 뭉치로 들어간, 새장의 한쪽 구석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
아빠. 그들이 아빠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아빠가 체포됐을 때 모습은 마치 혼자서 럭비팀 한 무리를 상대로 싸운듯 보였다. 그들은 아빠를 문 밖으로 끌어내 기자들이 잘 볼 수 있게 해준 뒤 차에 던져넣었다. 경찰 공보실장은 대외발표에서 아빠가 밀매품 최소 2천만개에 대한 책임이 있는 불법제조행위의 조직범죄를 저질렀으며 체포시 저항했던 흉악범이라고 말했다.
난 거실에 놓인 내 전화기 화면으로 그걸 모두 지켜보면서 어떻게, 아니 대체 어떻게 우리 초라한 단층집과 끔찍하게 형편없는 살림을 보면서 조직범죄의 우두머리가 사는 집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마치 전리품처럼 프린터도 집어가더니 기자들 앞에 전시했다. 그게 놓였던 부엌의 작은 성소는 끔찍하게 허전해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판자를 집어올려 불쌍하게 짹짹거리는 새를 구해준 다음 거기에 믹서기를 놨다. 그것도 집에서 프린터로 만들었던 거라, 새 베어링과 다른 구동부품을 프린트하지 않으면 1개월밖에 작동하지 않았다. 난 프린터가 있었을 때, 프린트할 수 있는 건 뭐든 분해하고 조립해서 만들 수 있었다.
내가 18살이 됐을 때 비로소 아빠가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난 그사이 아빠를 3번 면회했다. 10번째 생일, 아빠의 쉰번째 생신,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아빠를 마지막으로 만난지 2년이 지났는데 그땐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아빠는 교도소에서 난 싸움 때문에 다리를 절었고, 자주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를 쳐다보시는 모습은 틱장애인처럼 보였다. 나는 택시가 우리를 옛날 집앞에 내려줬을 때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집안에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나는 이 노쇠하고 절뚝거리는 해골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아빠가 나를 앉히며 “레니”하고 말했다. “넌 똑똑한 아이지, 난 알아. 너는 늙은 애비가 프린터와 충전재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지?”
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눈을 감은 채 “아빠는 10년이나 감옥살이를 했어요, 아빠. 10년이라고요. 감옥에서 10년을 더 살 수도 있는데 믹서기, 조제약, 노트북, 디자이너 모자같은 걸 또 만들겠다고요?”
아빠는 싱긋 웃었다. “레니야, 아빠도 바보가 아니야. 그동안 배운 게 있어. 모자나 노트북같은 건 감옥에 갈만한 가치가 없어. 그런 시시한 건 다시는 만들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안 해.” 아빠는 차 한 잔을 타서 마치 위스키라도 들듯이 음미하시더니 길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아빠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레니야, 이리 오렴. 조용히 해 줄 얘기가 있단다. 감옥에서 10년을 지내면서 결심한 걸 말할게. 이리 와서 바보같은 애비 얘길 들어봐.”
난 아빠에게 투덜거린 일로 죄책감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아빠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대체 감옥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나는 “뭐예요 아빠?”하고 물으며 가까이 기대어 앉았다.
“레니, 난 더 많은 프린터를 프린트할 거야. 모두에게 1대씩 돌아갈 정도로 많이. 그건 감옥에 갈만한 일이야. 어떤 일보다도 가치있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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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소설은 코리 닥터로우[1]의 2006년 1월 발표 단편소설 작품 ‘프린트범죄(Printcrime)’의 한국어 번역판이다.
프린트범죄는 3D프린팅 기술의 대중화로 열리는 신세계가 현대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한 전망과 관측 가운데 섬짓하면서도 개연성이 충분한 일면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지금처럼 3D프린팅이라는 기술이 어느정도 대중에 알려지기 10년도 더 전에 쓰인 내용이란 점에서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닥터로우는 프린트범죄를 ‘크리에이티브커먼스라이선스(CCL)’ 기반으로 공개했다.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BY-NC-SA) 조건을 따른다면 어디에든 퍼나를 수 있는 글로 내놓은 것이다. 그의 블로그를 통해 공개된 원문(http://craphound.com/?p=573)을 읽을 수 있다.
각국 자원자들을 통해 여러 언어판으로 번역된 프린트범죄가 배포됐다. 닥터로우의 개인 블로그에 다른 언어판들의 링크도 소개되고 있었다. 그 중엔 최세진 이라는 분이 번역한 한국어판 링크도 있었는데, 3년전 내가 확인한 시점에 해당 블로그는 보존되지 않았다. 그래서 130601 내가 직접 번역한 한국어판에 그가 지정한 CCL(BY-NC-SA)을 부여해 지디넷코리아 뉴스사이트를 통해 전문을 게재[2]했고 160809 개인 블로그에 옮겨 재편집, 게재했다.
[1] 코리 닥터로우는 캐나다출신 SF소설가, IT칼럼니스트, 전자프론티어재단(EFF) 활동가. 국내 정식 출간된 그의 작품으로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제목의 소설 ‘리틀브라더’가 있다.
[2] 번역문 전문의 지디넷코리아 게재 자체는 코리 닥터로우 측에 직접 요청해 예외적으로 허락을 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CCL 라이선스는 지디넷코리아라는 별개의 라이선스 원칙을 갖고 있는 사이트의 일반 저작권 규정과 상충할 여지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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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3D프린팅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점은 대략 3~4년전부터다.
초기엔 기존 제조기술로 불가능한 구조의 플라스틱 성형을 시도한다든지,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기하학적 디자인을 오차 없이 재현한다든지 하는 사례가 많이 알려졌다. 그 뒤 개인용 3D프린팅 장비의 보급에 시동이 걸리면서는 도면의 공유와 맞물려, 총기제작으로 안보를 위협한다거나 유명 캐릭터 디자인을 도용한 소품제작으로 기업의 지적재산을 침해한다는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사건들은 잠깐의 해프닝으로 지나갔다. 지금은 각 산업계에서 접근성이 높아진 3D프린팅 솔루션을 어떻게 응용할 것인지에 관한 연구 사례가 활발히 공개되는 추세다. 이따금 의료계와 과학계와 식품산업계에서 3D프린터로 뭘 만들었네 하는 뉴스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중이고, 일반인용 3D프린팅 기술 보급 사업도 궤도에 오른 듯하다. 디지털 인쇄 기술을 일상재로 만든 2D프린터가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기술로 보급되면서 문서 문명의 새로운 장이 열렸듯, 저렴한 3D프린터의 보급에 따라 사물 문명의 새로운 장이 열리지 않을까 싶다.
코리 닥터로우의 프린트범죄는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3D프린팅 기술의 확산 흐름이란 현상이 아니라 그 절정에 도달한 이후의 미래, 인류가 웬만한 일상의 사물들을 일반 가정에서도 손쉽게 복제, 배포할 수 있게 된 상황을 전제로 화두를 던진다. 오늘날 디지털콘텐츠와 소프트웨어(SW)만을 ‘불법복제’로부터 보호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만, 미래엔 3D프린터를 통한 물건 제작 역시 ‘불법복제’로 간주될지 모른다는 우려섞인 전망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면서.
3D프린터가 물질문명을 자유케 하리라, 아마 저작권법만 해결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