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묘가 나이를 좀 먹었다보니 종종 동물병원에 가서 반려묘 상태에 대한 수의사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 처지다. 이빨이 건강하지 않아 발치를 해야 할지 어떨지 상담하는 과정에 고양이의 치아 상태 진단과 발치 수술을 위한 조건, 과정 등을 좀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두루뭉술하게만 알고 있었으나, 동행한 반려인이 진정한 보호자로서의 책임과 성실성을 다해 질문한 덕분에 수의사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구체적인 답변을 이끌어낸 덕분이다.
마취의 종류
발치를 하려면 마취를 해야 한다. 호흡(흡입)마취라는 종류다. 수면가스를 흡입하게 하는 호흡마취는 상대적으로 장시간동안 반려묘의 각성과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다. 호흡마취가 필요한 이유는 발치 과정이 반려묘에게 큰 통증을 수반하고 수시간 가량의 장시간에 걸쳐 수의사의 외과적 의술이 발휘돼야 하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호흡마취는 발치 수술을 전제로 시행된다. 발치 수술을 전제하지 않는 마취도 있다. 주사마취라고 한다. 주사마취는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각성과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는 시간이 최장 20~30분으로 비교적 짧다. 수술과 같은 조치에는 적절하지 않다. 대신 수술 필요성을 판단하는 검사의 일부인 치아 엑스레이 촬영 시 또는 스케일링과 같은 시술 시 선택될 수 있다.
마취를 시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주요 변수로 췌장 염증 수치가 있었다. 노령인 우리 반려묘는 췌장염을 앓아 왔다. 수술 후 회복 가능한 수준의 건강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주요 검사 가운데 엑스레이로 치아 자체의 상태를 판단하는 것뿐 아니라 혈액 검사도 포함된다. 췌장염에 걸린 우리 반려묘의 경우 혈액 검사 중 췌장 수치라는 종류의 평상시 값이 정상 범위보다 항상 높아 이를 떨어뜨려야 했다.
발치 수술을 결정하기 전, 우선 이틀에 걸쳐 입원 후 수액을 맞혔다. 간신히 췌장 수치가 정상 범위의 상한선으로 낮춰졌다. 수술을 하면 이 수치는 다시 올라간다고 수의사는 말했다.
엑스레이 없이 수술 범위 결정
발치 수술을 결정할 때 큰 난관은 보호자로서 수술 범위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보호자로서는 반려묘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고 동시에 치료효과와 안전을 극대화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와 반려인은 수액을 맞히며 입원하는 동안 엑스레이를 찍어서 수술 범위에 대한 조언을 수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수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병원에서는 발치 수술 범위에 대한 판단 근거로 엑스레이를 찍을 필요가 있지만, 그것은 이미 호흡마취로 수술 준비에 들어간 이후에 결과를 받는 것이 된다. 의사로서는 수술 범위 판단에 필요한 만큼 엑스레이를 참고할 수 있지만, 보호자에게 그것을 보여 주고 장시간에 걸쳐 어떤 상태인지 설명한 다음 수술 범위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여유만이 주어진다고 했다.
우리 반려묘는 이미 송곳니 4개를 제외한 전체 발치를 한 상태에서 윗송곳니 양쪽 두 개를 추가 발치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상태였다. 둘 중 한 쪽은 확실히 발치가 필요했다. 문제는 나머지 한 쪽의 상태였다. 과거보다 육안으로 보기에 더 나빠졌는지, 그대로인지 알 방법이 우리에게 없었고, 의사조차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어쩌면 그조차 미심쩍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건드려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가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시점에 따로 우리에게 와서 상태가 확인된 윗송곳니 하나의 발치 여부를 결정하게 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그 시간동안 우리 반려묘는 수술 진행을 위한 마취에 이미 들어가 있을 테고, 보호자로서 그 판단을 위해 고민하는 동안 마취 시간은 길어지게 된다. 마취 시간이 길어지면 반려묘의 몸에 부담이 될 뿐이었다.
수의사를 믿을 수밖에
수의사는 마지막 검사 시점인 2년 전에는 발치가 필요한 한 쪽 윗송곳니에 대해 ‘장차 나빠질 것’이라는 주관적 판단을 제시했다. 육안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그게 맞았다. 나머지 한 쪽 윗송곳니 또한 지금은 육안으로 그리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멀쩡할 수도 있는 윗송곳니 하나를 함께 뽑아 반려묘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의 판단 근거와 수의사의 조언이 절실했다. 그게 없었다. 나와 반려인과 수술 범위 결정을 위해 상담할 때에는 엑스레이를 찍지 않은 상태여서 확실히 안 좋은지, 안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는지, 멀쩡한지 판단할 근거가 수의사에게도 없다고 했다.
나와 반려인은 고민 끝에 수의사의 판단을 믿고, 기본적으로 한 쪽 윗송곳니 발치를 하되 엑스레이 촬영 결과로 확인된 나머지 한 쪽 윗송곳니의 상태가 ‘점차 나빠질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함께 발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는 현재 확실히 발치가 필요한 한 쪽 윗송곳니에 대해 수의사의 주관이 결국 옳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려인과 나는 이러한 답답한 상황에 반려묘의 안위를 걱정하며 격앙된 감정을 참기 힘들었고, 수술동의서에 서명하고 동물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마음이 상해 서로 수의사와 상담하는 과정에 있었던 오해와 소통 태도 문제를 두고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슬펐다.
이날 오후 수의사는 우리에게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연락해 발치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났으며 양쪽 윗송곳니 상태가 모두 나빴노라고 설명했다. 회복하는 시간을 두고 반려묘를 이틀간 더 입원시킨 뒤 데려가 달라고 얘기했다. 상담 과정에서 노령의 우리 반려묘는 앞으로 이 이상의 마취와 수술은 힘들 것이라고 수의사는 말했었다.
사흘 뒤 우리는 반려묘를 데리러 가기 위해 동물병원에 다시 갔다. 수의사는 수술 후 반려묘가 건강하게 잘 지냈지만, 마취에서 깨어나기까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했다고 말했다. 수의사의 호의로 할인받았음에도 우리 예상을 넘어선 입원비, 검사비, 수술비 일체를 지불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회복 과정에 먹일 알약 닷새 치를 처방받았다. 약을 다 먹이곤 병원에 다시 데려와 반려묘의 췌장 수치를 다시 살펴야 한다.
거의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온 반려묘 ㅇㅇ이는 이날따라 너무나 가벼워져 있었다. 우리가 알던 것보다 몸무게가 확 줄어든 듯했다. 수술 부위를 스스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씌워진 넥칼라 때문일까, ㅇㅇ이의 몸집도 어쩐지 왜소해진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이제 ㅇㅇ이는 회복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그의 동생 고양이 ㅁㅁ이와 당분간 떨어져 지낼 것이다. 우리 ㅇㅇ아, 부디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리와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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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8 구상. 250309 작성. 250311 편집,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