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는 얘기.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몇 자 적어 봄.
애플이 제품명에 숫자 10을 가리키기 위해 로마자 알파벳 X 형태 문자를 넣은 건 처음이 아니다. 과거 인텔칩을 채택해 처음 상용화한 맥 컴퓨터용 운영체제를 맥 오에스 텐(Mac OS X)이라 부르기 시작한 게 먼저다. 아마도 메이저 버전이 9까지 이어졌던 파워PC 프로세서 기반의 ‘클래식’ 맥용 운영체제 시리즈와 구별짓기. 인텔맥 컴퓨터의 운영체제 작명은 앞에 ‘맥 오에스 텐 10.숫자’ 뒤에 덩치 큰 고양이과 동물 이름을 별칭으로 쓰는 형태가 2001년 10.0(치타)부터 2012년 10.8(산사자)까지 이어졌다.
꽤 오래 이어진 고양이과 동물종 명명 체계는 2013년 10.9(매버릭스)부터 없어졌다. 더불어 주 명칭인 맥 오에스 텐도 표기 변화를 겪었다. 앞서 2012년에 맥이 빠진 ‘오에스 텐(OS X)’으로 바뀌었다가, 2016년 ‘맥오에스(MacOS)’로 바뀐 것. (그리고 과거 있었던 Mac과 OS 사이 띄어쓰기가 빠짐.) 당시엔 이게 아이폰의 iOS와 애플TV의 tvOS와 애플워치의 watchOS 등 다른 기기 라인의 운영체제와 통일성을 띠기 위한 작명이란 그럴싸한 해석이 있었다.
사실 이 작명법에서 나는 딴 걸 눈여겨 봤다. 대체 누구 (어쩌면 타계한 그 분) 취향인지 모르지만 과거 장장 10년 넘게 엑스로 쓰고 텐으로 읽히게 하던 표기의 삭제. 맥이 있든 없든 오에스 텐 시리즈의 텐 표기는 애플 하드웨어용 소프트웨어에 인텔칩이 들어가는 격변을 상징하는 흔적이었다. (마침 2014년부터 ARM 기반 맥 관련 루머가 흘러나오기도 해서) 애플은 이제 텐 표기를 없애는 걸로 기존 세대와의 또다른 단절을 준비하나 싶었다.
망상은 싱겁게 끝났다. 사실 지난밤 애플이 그간 루머대로 ‘아이폰 텐(iphone X)’이라는 이름을 붙인 10주년 기념 신형 스마트폰 신모델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폰 텐이라는 작명 스타일에서 3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왠지 애플은 아이폰 텐에 ‘텐’ 명칭을 주기 위해 지난해 오에스 텐의 ‘텐’을 빼앗은 것 같다는 점. 둘째, 오에스 텐의 텐이 클래식 맥 플랫폼과의 단절 흔적이듯, 아이폰 텐의 텐도 기존 아이폰과의 단절 흔적이 되지 않을까 싶다는 점. 셋째, 맥 오에스 텐이 10이라는 수를 의미하긴 하지만 이후 더 이상 ‘소프트웨어의 버전’을 의미하진 않게 된 것처럼, 아이폰 텐 역시 이후 ’10주년 기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고유 브랜드처럼 쓰일 것 같다는 점. (예를 들어 아이폰 텐 2018년형 , 2019년형 …)
굳이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8과 8.1에서 건너뛴 것처럼 애플이 아이폰9를 건너뛰고 아이폰10으로 간 것’이라 표현할 필요는 없겠다. 그렇게 치면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이 건너뛴 숫자가 한 둘이 아니다. 애초 윈도 시리즈 명칭은 소프트웨어 버전과 무관하게 출시연도(95-98-2000-ME) 위주였고 윈도7 이후 윈도8로 숫자를 높인 듯 보이는 게 오히려 이례적이었다. 애플 아이폰도 첫모델 2G에서 후속제품이 새로운 네트워크를 지원한다는 의미로 3G를 붙였고 이후 개량모델에 s를 붙이며 격년 단위로 ‘신형’과 ‘개량형’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이폰3G-3Gs-4-4S-5-5s-6-6s-7순으로 출시됨.) 즉 애플이 뭔가 건너뛰었다면 그건 아이폰9가 아니라 아이폰7s다.
여담. 음원제작 소프트웨어 ‘로직 프로 텐’이 과거 맥 오에스 텐과 동일한 작명 스타일을 적용받은 것 같다. 이 소프트웨어의 이름에서도 텐이 떨어져나갈지는 모르겠다. 업데이트가 그리 빈번하지 않은 제품이라 당분간 유지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