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SW 저작권 보도 참사

2018년 3월 14일 오후 3시경 지디넷코리아에 게재된 카카오, 오픈소스SW 저작권 침해했나(http://m.zdnet.co.kr/news_view.asp?artice_id=20180314103623) 기사는 그 제목대로, 카카오가 어떤 오픈소스SW의 저작권을 침해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었다. 기사의 구성을 네 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카카오가 올챙이(Tadpole DB Hub) 프로젝트의 오픈소스 코드에 기능을 보탠 DB접근제어툴 이름을 개구리(Query Executor (Frog))로 바꾸고 전사 도입하려다 말았다.
  2. 올챙이 프로젝트 설립자 조현종 씨는 명칭변경에 원저작자로서 저작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했고 카카오가 받아들이지 않자 올챙이 소스코드 배포를 중단했다.
  3. 카카오는 개구리같이 이름 변경한 오픈소스SW 도입 사례가 또 있는지 확인을 거부했지만 개구리 개발 및 사용과 관련한 올챙이 저작권 침해 가능성을 일축했다.
  4. 취재에 응한 법률전문가들은 저작권 침해 가능성을 일축한 카카오 법무팀과 달리 조현종 씨가 원저작자로 가진 권리 중 일부가 침해됐을 수 있다는 판단을 제시했다.
피처 이미지
풀려서 흩어진 올에 파묻혀 있는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 [사진=Pixabay 원본 편집]

당초 이 기사는 게재 당일 오후 어떤 데스크의 관심에도 들지 못하고 사이트상 어떤 주요 노출 위치도 배정받지 못하고 조용히 묻힐 뻔했다. 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다수의 SW개발자와 오픈소스 커뮤니티 관계자들로부터 작은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기사에 빠진 정보들

관심은 당일 밤과 이튿날 오전까지 빠르게 증폭됐는데, 그 수준은 원래 기사 함량에 적정한 정도를 한참 넘어섰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만한 관심을 끌기에는 기사의 수준이 많이 모자랐다. 기사는 독자의 관심에 부응하기 위한 중요 정보를 빠뜨리고 있었다. 크게 2가지 유형의 정보를 배제했다.

배제된 정보 첫째 유형은 ‘확인할 수 없는 내용’에 해당하는 정보였다. 이를테면 2016년 11월 당시 카카오 개구리 개발 담당자와 올챙이 원작자 조현종 씨 사이에서 오간, ‘카카오의 개구리 유지보수 요구와 조현종 씨의 정중한 거절’이라는 맥락의 구체적인 대화. 그리고 이런 경험은 어쩌면 조현종 씨가 전업 오픈소스SW 개발자 겸 프로젝트 커뮤니티 리더로서 2011년 올챙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꾸준히 지속됐을 것이라 볼만한 몇 가지 정황.

배제된 정보 둘째 유형은 이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을 함께 다뤘을 때 의미가 분명해지는 다른 사실들이다. 이를테면, 올챙이는 수년째 소스코드가 공개된 오픈소스SW 버전과 엔터프라이즈 버전 2가지로 제공돼 왔다. 엔터프라이즈버전을 도입한 기업 중에는 ‘카카오뱅크’라는 인터넷은행도 있다. 은행도 쓸 수 있을만큼 엔터프라이즈 버전에는 기업 인프라를 고려한 기능이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카카오는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쓰지 않고 오픈소스SW 올챙이 버전 코드를 가져가 그 기능을 구현했다.

어그로만 끌었다

이런 선택을 통해 작성된 기사는 지난 며칠간 페이스북 타임라인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카카오의 올챙이 포크와 명칭변경을 둘러싼 여러 논의를 촉발했다. 다만 뚜렷한 결론이나 판단의 기준점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이해당사자 중 한 명인 조현종 씨가 제시한 추가 정보를 통해, 당초 기사를 접한 뒤 가졌던 인상이나 판단의 변화를 겪은 독자들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독자들이 기사에 누락된 맥락과 정보를 스스로 채워넣기 위해 직접 애쓴 과정이라고 포장할 수도 있지만, 냉정히 보면 함량미달 기사가 초래한 불필요한 혼란도 컸다.

결과적으로 독자들에게 판단근거나 실마리를 실제로 가능한 최대한도로 제공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매체로서 사안이 갖는 함의를 명쾌하게 짚어주지도 못했다. 기획 단계에서 아무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가 이렇다. 며칠 째 반성 중이다.

추가 보도 요청

거대한 혼란을 야기했다는 찜찜함이 가시지 않은 2018년 3월 15일, 추가 보도를 요구하는 독자 메일마저 받았다.

뭐라 회신할지 생각하다가, 이처럼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의식의 흐름대로 써서 보냈다. 후속 보도를 위한 의견 교환 차원에서 아예 전문을 공개해 올리기로 했다. 계기를 준 추가 보도 요구 내용도, 발신인의 양해를 구하고 익명으로 함께 공개한다.

(발신)******@*****.com

(제목)추가 기사 좀 작성 부탁드립니다.

(본문)”카카오, 오픈소스SW 저작권 침해했나”

기사를 보고 내용을 남겨드립니다.

기사 내용만 봐서는 그냥 올챙이의 원작자 분께서 카카오에서 명칭만 바꾼 부분에 대해 주로 다뤄지고 하는 거 같아서 제대로 된 내용이 별로 드러나지 않은 거 같습니다.

이 내용을 좀 아는 개발자들과 그렇지 않고 그냥 기사 내용만 보고 이해한 개발자분들간에도 여러모로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안되어서 그런지 오히려 올챙이의 원작자에 대해

” 이름 바꾼 내용 하나만 보고는 상표권 가지고 원작자가 법적 분쟁 일으키고는 소스코드 감췄다”

라는 식으로 해서 상표권만 챙기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상표권 이외에도 문제가 있는 부분과 그에 대해 언급되는 내용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추가 보도를 좀 적어주셨으면 합니다.

위 메일에 2018년 3월 17일, 아래 내용으로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임민철기자입니다.

1. 지적하신대로 해당 기사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바로, 보도시점에 함께 사람들에게 알려져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올챙이 원작자가 ‘듀얼라이선스’ 방식으로 SW 개발 사업을 벌여 왔고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었다는 점
-카카오는 듀얼라이선스 중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갖춘 ‘엔터프라이즈’ 라이선스를 구매하지 않고, 올챙이 오픈소스 코드를 가져다 엔터프라이즈 라이선스 버전의 기능을 직접 만드는 방향으로 개작한 ‘개구리’를 만들었고, 그걸 원작자에게 ‘유지보수 해달라’고 요구했다는 점

엔터프라이즈 버전이 있어도 오픈소스 코드를 가져갈 수 있죠. 커스텀 버전을 만들 수 있고요. 그런데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파는 사람을 불러다가 ‘유지보수 해달라’는 건 상식 밖 일입니다. 다른 분야 종사자라면 몰라도 본인이 SW개발자라면 “거절하면 그만아니냐”, “기분이 나쁘고 말 일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하고 넘길 일은 아닐 듯합니다. 오픈소스가 아니라 상용SW만 파는 회사에서도 커스텀 버전 유지보수 하다가 망한 케이스가 많잖아요. 그런데 SW에 무지한 조직도 아니고 수많은 개발인력으로 구성된 카카오가 다른 SW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면 ‘네가 이걸로 망할지 어떨지는 걱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업에 대한 상도의나 존중이 결여돼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건 언론사에서 일반적으로 ‘어디가 ~를 했고 ~라는데, 기가 찰 일이다’라는 톤으로 감정적인 기사를 쓸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은 아니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는데, 뜬금없이 논평이나 시론을 쓸 수도 없고요.

공공연히 떠들 수 없는 사정이 작용해서, 최초 보도에는 확인 가능한 개별 사실을 추려서 열거하고 도식화할 수 있는 단순구성을 취해야 했습니다. 기사가 이 지경인 원인은 제 불찰입니다. 그럼에도 불필요한 오해가 확산되는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2. 업무권한의 한계로 후속보도 자체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를 위한 취재를 이어 갈 예정입니다.
-후속보도를 위해 주위의 유능한 동료들과 어떤 시각으로 어떤 내용을 얼마나 다뤄야 할 것인지 토론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가능한 경로를 통해 여러 개발자, 오픈소스 커뮤니티 참여자들의 반응과 의견을 참고하는 중입니다.

3. 기사에 담은 정보의 부족에 기인한 것과 별개로, 어떤 측면의 오해는 상표권과 저작권 개념의 혼동이 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확인한 범위 안에서는 이런 뉘앙스가 느껴지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반적인 오픈소스SW 라이선스와 상표권의 충돌 가능성 때문에 포크(fork)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명칭을 변경해야 하는데, 올챙이 원작자는 뭘 모르고 있다’

기사에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제 기사는 처음부터 카카오의 상표권 침해 행위를 지적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상표권’은 ‘저작권’과 법적으로 범주가 다른 개념입니다.
-올챙이 원작자는 ‘저작권자’이면서 ‘상표권자’입니다만, 카카오를 상대로 문제삼으려 한 것은 ‘저작권’의 일부분입니다. 올챙이 원작자분은 상표권에 대해 문제삼지 않습니다.
-기사에서 자문을 구한 변호사들도, 카카오가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카카오는 저작권의 여러 권리가운데 하나인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이고, 이는 상표권과 무관합니다.

4. 의견 고맙습니다.

같은 내용을 궁금해하실 분, 제 기사에 불만이 크실 다른 분들을 위해 이 답신을 페이스북에 일반공개나 친구공개로 작성하고 싶은데요. 양해해 주신다면, ***님의 메일 본문을 익명으로 인용해 쓰겠습니다. 회신 부탁드립니다.

임민철 드림

오픈소스소프트웨어재단 운영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민대학교 이민석 교수가 블로그에 2018년 3월 14일 보도 직후 남긴 글(http://hl1itj.tistory.com/170)과, 병원 및 약국 검색 앱으로 이름을 알린 ‘굿닥’의 신현묵 CTO가 브런치에 2018년 3월 15일 쓴 글(https://brunch.co.kr/@supims/271) 및 16일 쓴 글(https://brunch.co.kr/@supims/272)을 읽었고, 이밖에 수많은 페이스북 친구 SW개발자 분들의 보도 후 반응도 접했다. 팀 동료들의 의견도 들었다.

이번 혼란을 보완하기 위한 후속보도로 기사 형식이 반드시 적절한가는 의문이다. 여러 이유로 2018년 3월 19일 현재 후속보도의 내용, 형식, 구성, 시기, 방향은 확정되지 않았다. 일개 기자가 뭘 쓰겠다고 쓰면 또 마음대로 내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