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철의 Webology 시즌1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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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초콜릿 덩어리와 부스러기. 갈색 음료가 담긴 머그. 머그 밑바닥에 흘린 음료 얼룩이 말라붙은 모눈종이 스프링노트. [사진=Pixabay]
혼을 쥐어 짜는 느낌. 2016년 하반기 시작했던 개인 연재 기사를 쓸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쓸 때마다 그날 밥은 다 먹었고 잠은 다 잤으며 힘은 다 쓰고 기진한 몸을 질질 끌고 다닌 기억이 난다. 고작 한 달에 한 편 쓴다고 저 유난을 떨었는데, 위에서 바라듯이 좀 더 자주 쓰려고 했다면 지금쯤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 접수하고 있었을 지도.

개인 연재는 지디넷코리아 사이트 메인페이지에 작성자명을 담은 기획 시리즈명으로 노출되는 기사를 가리킨다. 창간 16주년을 맞아 신설된 이 시리즈를 9명이 각자 쓰는 걸로 돼 있었다. 개인 연재를 시작한 동료들은 첫 기사를 5월 쯤부터도 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임민철의 Webology’라는 시리즈명만 정해 놓고 첫 기사 구상에 골몰해 있었다.

2개월 걸렸다. 시리즈명 정한 뒤 첫 기사 올리기까지. Webology라는 시리즈명은 내가 꽂혀 있는 ‘웹(Web)’에 학문을 나타내는 접사 ‘-(올)로지((o)logy)’를 결합해 만들었다. 막연하기 짝이 없는 조어를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꾸준히 글을 쓰려면 관심 분야에서 출발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웹을 골랐는데, 아무런 할 얘기가 없을 때였다.

결국은 ‘기술’로 정했다. 그래서 웹 기술 얘기를 썼다. 웹 기술만 해도 온갖 것이 다 얽히기 때문에 역시 주제를 구체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리즈의 첫 꼭지니만큼 너무 무거워서도 혹은 너무 얕은 재미에 골몰해서도 곤란했다. 절충하되 기술 얘기를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고른 것이, 웹토렌트(WebTorrent)였다. 여기에 핫한 스트리밍 서비스업체 ‘넷플릭스’로 양념을 쳤다.

1탄 [넷플릭스의 미래, 토렌트에 있다?]는 그렇게 시작됐다. 애초에 웹RTC라는 기술을 핵심으로 삼았지만 재미가 있어야 했다. 얘기를 만들었다. 토렌트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저작물 불법공유 수단’이란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오히려 콘텐츠 서비스 사업자 넷플릭스는 그와 관련된 기술을 자기네 서비스 인프라에 적용하고 활용하려는 데 관심이 있다는 얘기.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넷플릭스의 미래, 토렌트에 있다?] – 6,000자
https://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722170159

첫째 편을 쓴 직후부터 내내 다음에는 뭘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결국 1개월만에 시리즈를 이었다. 2탄 [삼성브라우저로 보는 생체인식의 미래]를 준비했다. 웹기술보다는 삼성전자 개발팀의 최신 브라우저가 어떤 특징을 갖췄는지에 초점을 뒀다. 마침 8월초 공개된 갤럭시노트7의 생체인식 기능을 웹 결제 기능과 연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언급할 수 있었다.

[삼성브라우저로 보는 생체인식의 미래] – 6,700자
https://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817084932

둘째 편을 내보내고 1주일 뒤 열린 HTML5 KIG 미팅에 참석했다. 구글, 삼성전자, 네이버 웹기술 전문가들이 몰두하고 있는 프로그레시브웹앱스(PWA)라는 키워드로 셋째 편을 준비하기로 했다. 현장에서 들은 얘기, 구글이 앞서 치른 2차례의 개발자 행사, 2년전 삼성오픈소스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세션까지 싹 모아서 3탄 [오프라인 웹이 온다]를 썼다.

[오프라인 웹이 온다] – 8,600자
https://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922012153

셋째 편을 쓴 뒤엔 다시 막막해졌다. 3주간 방황하다가 ‘자바스크립트 재단’ 출범 소식을 접했다. 출범 배경을 살피니 IBM과 삼성이 플래티넘파트너였다. 이들이 왜 자바스크립트 재단에 투자했을까? 재단 프로젝트에 영향력을 미치려 했겠고, 그들과 리눅스재단의 개입은 결국 기술 파편화 문제를 완화하지 않을까에 생각이 닿았다. 4탄 [자바스크립트 생태계 통합될까]를 쓴 배경이다.

[자바스크립트 생태계 통합될까] – 5,400자
https://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1019140745

넷째 편은 사실 급조한 티를 지울 수 없었다. 앞선 3편에 비해 반응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반성했다. 대신 후속 주제를 일찍 정했다. 10월하순 네이버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공식 발표한 ‘웨일’ 브라우저의 개발 스토리를 다루기로 했다. 당일 세션발표를 온전히 듣지 못해, 온라인 공개된 영상과 발표 슬라이드로 5탄 [네이버 브라우저, 구글·애플 다 품은 사연]을 엮었다.

[네이버 브라우저, 구글·애플 다 품은 사연] – 7,300자
https://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1124141443

다섯째 편은 호응이 있었고, 네이버랩스 페이스북 페이지 담당자도 이걸 공유해 줬다. 링크를 지디넷코리아 페이지로 해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다음 편은 뭘 쓸까, 또 고민이었다. 그러다 12월 초 열린 HTML5 컨퍼런스에서 오전 토론회를 듣고 결심했다. 좌장 1명과 패널 5명의 발언을 혼자 듣기 아까우니, 기사로 써서 역사에 남기자고. 그래서 6탄 [웹은 정말 죽었나?]를 썼다.

[웹은 정말 죽었나?] – 19,600자
https://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1222170703

쓰다 보니 2016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임민철의 Webology 6편이 나왔다. 거의 한 달에 1편 꼴로 내놓은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덕분에 5만3천자 넘는 텍스트를 남겼고, 네이버뉴스와 네이버랩스 페이지에도 몇 번 올라갔고, 이걸로 페이스북 지인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글 쓰는 일을 하는 보람을 느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띄엄띄엄 쓰는 연재 기획을 의도하진 않았다. 쓰는 간격을 좀 줄이고 싶었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매일 오전 외신을 쓰고, 취재와 네트워킹을 위한 업무 미팅을 하고, 일일 취재 기사를 쓰고, 수시로 보도자료를 처리하면서 ‘남는 시간에’ 주제를 연구 분석하고 기획, 작성한다는 게. 개인 연재는 오히려 취재 기사나 외신을 쓰는 것보다 건당 투입 에너지, 시간 소비가 컸다.

써 보니, 글의 스타일이나 포맷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생략한다. 결국은 시간이다. 기자 개인에게 ‘더 멋진 일을 고민하고 시도할 수 있도록’ 실제 일과중에 여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일일 기사 마감과 보도자료 처리로 면피를 하는 게, 근근히 개인 연재 기획을 이어 가는 것보다 현명한 선택이 되는 환경에서는, 답이 없다.

그런 여유가 마련되지 않는 환경에서 개인 연재를 해내려면 개인의 무보수 노동이 필요하다. 관할 노동청의 감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조직에서 이미 무보수 노동에 익숙해진 몸이지만, 그럼에도 시간적 물리적으로 개인 연재는 서두에 말했듯 혼을 쥐어 짜는 느낌이었다. 물론 보람은 있었지만, 그 보람이 노동의 댓가를 상쇄해 주진 않는다.

해가 바뀌며 6개월이나 이어 온 개인 연재를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별 변화 없이 관성대로 기획을 잇는다면 며칠 안에 Webology 7편을 써 내야 한다. 나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의욕적으로 새 해를 맞은 마당에 관성을 따르긴 싫다. 공식적으로 선언하기는 애매하지만, 그래서 그간의 Webology는 ‘시즌1’로 마무리할까 한다.

Webology 시즌2를 구상 중이다. 혼을 쥐어 짜는 게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글을 쓰겠다. 소재는 없지만 3가지 목표가 있다. 덜 고되게, 덜 바쁘게, 덜 뜸하게.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좀 편한 글이 됐으면 좋겠다. 퇴근도 못하고 주 60시간씩 일하면서 쓰는 글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면서 더 자주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 이러면 부제를 ‘미션 임파서블’로 바꿔야 하나.

170402 옮김.